728x90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대표되는 포크 음악

70년대 청년문화를 대표했던 포크 음악은 군사정권 아래에서 온갖 핍박을 받았다. 당시 발표된 대부분의 포크 프로테스트는 검열대상 1호였다. 몇몇 아티스트의 노래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포크 음악이 금지곡에 묶였다. 이런 까닭으로 포크 음악은 제도권에서 더 이상 발 부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포크 가수는 음악적 변신을 통해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고집한 몇몇 아티스트는 제도권에서 벗어나 대학가로 그 거점을 옮기기에 이른다.

흔히 말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것이다. 언더그라운드란 ,와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용어로 말 그대로 대중들 앞에 화려하게 나서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가꿔 나가는 아티스트와 그들의 음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언더그라운드는 제도권 매체, 라디오와 TV에 의존하지 않고,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시작된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조동진이고, 또 다른 사람은 정태춘이었다. 이 두 사람은 프로테스트 포크와 서정 포크를 넘나들며 활동했는데, 특히 대학가와 대학가 중심의 소극장, 다방, 카페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먼저 조동진은 1978년 <행복한 사람>이란 포크 음악을 발표하며 대학가에서 최고의 포크 가수로 사랑을 받았고, 이후 <제비꽃>, <나뭇잎 사이로> 등을 발표하며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았다.

또한 이 시기 들국화 멤버였던 전인권, 최성원을 비롯해 그의 동생 조동익, 이원재, 하덕규, 이주원, 나동익 등 그의 음악에 동참했고, 그의 언더그라운드 운동은 이들 아티스트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정태춘은 1978년 <시인의 마을>을 발표하며 공연장,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언더그라운드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한국적 포크로 바꾸는 작업에 앞장서 나갔다.

후에 그의 아내 박은옥 부부 듀오로 활동하며 주옥같은 포크의 명작을 80년대 중반까지 계속해서 발표했다. 이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노력에 80년대 포크음악은 군사정권의 감시와 검열 속에서도 질적,양적 팽창을 가져왔다. 소위 언더그라운드 뮤직이 80년대 초중반 하나의 대중문화운동으로 확산됐고, 이런 운동은 많은 젊은 가수들이 동참하는 기현상을 낳기 시작한다.

당시 활동했던 주요 포크 스타로는 해바라기, 들국화, 어떤날, 한돌, 신형원, 동물원, 시인과 촌장, 박주연, 이광조, 소리새, 고은희, 이정란, 햇빛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포크 가수들이 80년대 우리 가요계를 이끌었으며,우리 가요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된다.

728x90

'Music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 장르의 종류 (1~10)  (0) 2021.08.24
한국 90년대 포크 음악 서문  (3) 2021.08.19
한국 포크 음악 (2)  (0) 2021.08.11
한국 포크 음악 (1)  (0) 2021.08.09
제3세계 포크 음악  (0) 2021.08.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