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포크 음악 (2)

2021. 8. 1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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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의 황금기 열리다
이렇듯 70년대 초반은 포크의 황금기로 당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룹으로 <편지>, <사랑의 진실>의 어니언스가 있다. 임창제, 이수영으로 구성된 이들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그룹으로 그들 뒤에는 안건마라는 걸출한 작·편곡가가 있었기에 그들만의 우수어린 독특한 분위기의 곡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밝고 절묘한 하모니를 장점으로 한 <구름들 보금자리>, <욕심없는 마음>의 사월과 5월이 있는데 백순진을 리더로 김태풍, 이수만, 김정호 등이 거쳐갔다. 이밖에도 특유의 샤우트 창법으로 인기를 끈 <언덕에 올라>의 투 코리안스는 김도향, 손창철로 구성된 팀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포크적인 컬러보다는 당시 인기 있던 탐 존슨의 창법을 닮았지만 아무튼 통기타를 다루었기 때문에 그룹 사운드와는 구별해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이렇듯 이들은 한결같이 통기타를 다룸으로써 포크는 곧 통기타 음악이란 공식이 수립되고 당시 불어온 유행의 물결로 표현돼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가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청년문화'란 용어가 등장한 가운데 이른바 '살롱'이라하여 통기타 음악과 생맥주가 있는 무대가 유행했다. 당시의 풍물로 지금도 청바지가 젊은이의 전유물이지만 당시는 미군부대 등지에서 흘러나온 구제품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게 청바지로 남내문 시장에서 구입해 자신의 몸매에 맞게 줄여 입은 판탈롱 청바지의 멋은 최고였다.

싱어 송라이터 시대 도래
포크가 소개된 이래 가요계는 스스로 작곡하고 노래하는 소위 싱어 송라이터(Singer Songwriter)시대가 도래한다. 트윈 폴리오에서 솔로로 독립한 송창식, 윤형주가 각자 솔로로 자신의 노래를 직접 만들며 괄목할만한 활동을 펼쳤으며 이들과는 전혀 음악적 스타일이 달랐지만 콧수염의 사나이 이장희가 그 개척자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의 음악은 짐 크로스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을 샘플로 한 것으로 록과 컨트리를 혼합한 형태였는데 여기에다 자신의 백 밴드인 동방의 빛과 함께 활동하며 특히 최언호(작가), 이창호(감독), 이장희(음악), 세 사람이 콤비를  이뤄 일련의 영화 속에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등으로 영화 주제가를 히트시키는 역할과 함께 한국 포크사에 일익을 담당했으며, 4월과 5월 출신의 김정호가 <하얀나비>, <이름 모를 소녀> 등 우수가 깃든 자작곡으로 당대를 풍미했던 것도 70년대였다.

그렇지만 이렇듯 맹위를 떨치던 포크 음악이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갑작스레 퇴조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 즉 유신체제 아래에서 포크의 특징인 메시지 전달이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여건으로 더욱 위축된 분위기 아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요계에 대마초 사건이 터지면서 이에 연루된 많은 가수들이 활동을 중단하는 바람에 포크는 더욱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한편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시가 있는 노랫말을 들고 나와 솔로 활동과 함께 해바라기, 풍선들이란 그룹을 병행하는 한편, 작곡가로서 역량을 발휘했던 <고아>의 오세은과 <밤에 떠난 여인>의 하남석은 나름대로 포크 보급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 아래서 70년대 후반은 포크의 원래 이미지가 많이 변질된 가운데 홍민의 <고별>, 전영록의 <애심>, 백영규의 <순이생각> 등이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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